그녀는 2살 때 자폐증으로 진단받았다. 당시 진단한 의사는 평생 보호시설에 있어야 하며 평생 말을 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가 어린 시절이던 1940년대에서 1950년대에는 자폐증이 잘 알려지지 않았고 그것이 소아정신분열의 일종인 데다, 양육방식이 잘못되어서 생긴다고 하던 시대였다.
어린 시절의 템플 그랜딘을 보면 몸을 흔들거리며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도록 하는 행동만 계속하고 있었고, 그녀의 어머니가 까슬까슬한 속치마를 입혀줬을 때는 샌드페이퍼로 살을 깎는 것 같아 괴로웠다고 한다. 지금도 브래지어 등 살에 직접적으로 닿는 속옷을 입을 때 일부러 여러 번 세탁해서 닳게 한 뒤 입는다고 한다. 그녀는 말을 4살까지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과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교수가 되었다. 중학교 시절에 놀리는 아이를 때려 퇴학을 당했지만 자신의 어머니와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이 자신의 장애를 장애로 여기지 않고 창의적이고 가치있는 프로젝트를 구상하는 일로 이끌어주는 등의 도움으로 일리노이 대학교에 입학해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림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재능을 살려 동물의 이동경로에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가축시설을 만들었다.
이 시스템은 미국 농장의 60% 이상이 채택한 시스템이며 지금도 곳곳에 확대 도입되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진단받았다. 다만 템플 그랜딘의 자서전에는 “자기는 아스퍼거 증후군이기 때문에 TOM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 라는 말이 적혀있다.
https://www.templegrand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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